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별'생각 본문
오늘 아내랑 장성에 있는 백양사에 다녀왔다. 단풍이랑 벚꽃으로 유명하다. 아쉽게도 벚꽃은 못 봤다. 아직 필 때가 안 돼서. 그렇지만 한적해서 아주 좋았다. 1시간 정도 조용한 산길을 걸으면서 아내랑 들꽃도 보고, 나무도 만지고, 기분 좋은 봄바람을 쐬었다.
오랜만에 사천왕상도 길게 봤고(전에는 무서워서 피했다), 왜 대웅전의 석가모니 상은 금상일까 생각하면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린 '자녀를 위한 기도' 현수막을 잠시 쳐다봤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백학봉'이다. 어쩜 그렇게도 잘 생겼는지 입이 딱 벌어진다. 벚꽃이 필 때 다시 와야겠다.
절 입구에 있는 안내문도 기억에 남는다. '이뭣고'라는 화두에 대한 설명이다. 이번 주는 부활절 제2주로 복음서 본문이 요한복음 20:19 - 31절이다. 도마가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듣고 "못 자국을 보고, 거기에 자신의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한 그 본문이다. 의심이라는 단어의 반복 때문인지, 발음이 재밌어서인지 '이뭣고'를 다시 생각해 본다.
자기연민과 결별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 번 웃고, 한 번 우는 게 답답했다. 두 번 웃고, 세 번 웃고, 그리고 한 번 울면 좋을 텐데 예외가 없다. 한 번 웃으면 반드시 한 번 울어야 한다. 어떨 때는 시소 타듯, 그네 타듯 사는 삶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내가 잘 되는 일에 관심이 있는지 의심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면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깨닫게) 됐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어쨌든 하나님이 내가 잘 되는 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혼자만 두 번 웃고, 세 번 웃는 것은 어쩌면 미안한 일 아닐까? 남들이 다 한 번 웃고, 한 번 우는데... 나도 그래야 덜 미안하지.'
광주 생활에 웬만큼 적응했나 보다. 별생각을 다 한다. 그래도 의심치고는 괜찮은 의심 아니었나 생각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이 불행할 수 있다는 상상과 같다. 다 같이 힘든 삶을 사는데 나만 편하다면 왠지 꺼림칙할 것 같다. 광주 생활에 웬만큼 적응했나 보다. 나 말고도 한 번 웃고, 한 번 우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니 한 번 웃고, 두 번, 세 번, 여러 번 우는 사람들. 그런 삶이 있어 어쩐지 미안하다. 꼬박 꼬박 웃는 게 사치는 아닌지. '별' 생각을 다 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