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2026(A)성령강림절 18주 노아교회 설교 본문

나중에 온 사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출애굽기 16:2-15입니다.
출애굽기 16:2-15
2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항의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 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습니다."
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이 날마다 나가서, 그날 그날 먹을 만큼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그들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하여 보겠다.
5 매주 엿샛날에는, 거두어들인 것으로 먹거리를 준비하다 보면, 날마다 거두던 것의 두 배가 될 것이다."
6 모세와 아론이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다. "저녁이 되면, 당신들은 이집트 땅에서 당신들을 이끌어 내신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7 당신들이 우리를 보고 원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이 주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이제 아침이 되면, 당신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라고, 당신들이 우리를 보고 원망하십니까?"
8 또 모세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저녁에는 당신들에게 먹을 고기를 주시고, 아침에는 배불리 먹을 빵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들이 주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당신들이 하는 원망은 우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9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오라고 일러주십시오."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할 때에,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주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
1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너희가 저녁이 되면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빵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너희는 나 주가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하여라."
13 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진 친 곳을 뒤덮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진 친 곳 둘레에 안개가 자욱하였다.
14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럴 수가, 광야 지면에, 마치 땅 위의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15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입니다.
봉독자: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함께: 하나님 감사합니다.
먼저 인사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 열여덟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만나를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출애굽기 본문과 포도원 일꾼 비유가 기록된 마태복음 20장 말씀입니다. 두 본문 모두 자격 없는 자들에게 은혜와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감사와 축복
먼저 정영숙 권사님의 장례를 잘 치를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시고, 마음을 써 주신 노아교회 성도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주중에 어머니께서 미리 써 두신 유서를 읽었습니다. 7월 25일이니까 세 번째 입원하셨을 때이고, 몸이 많이 쇠약해진 때였습니다. 유서 내용 중에 노아교회 사람들의 사랑과 평화 기도회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그 부분만 읽어드리겠습니다.
아프면서 모두에게 받은 사랑의 수고들, 특히 지치지 않으시고 주보에 이름을 올려주신 수고와 사랑은 하나님 은혜였습니다. 아프면서 모두에게 받은 사랑의 수고 덕분으로 내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저도 주님의 사랑이 흘러가도록 사는 날 동안은 최선을 다하겠지만, 솔직히 몸보다 마음만 앞설 뿐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무게는 버겁겠지만, 잘 견디며 지금의 유서를 쓰는 나를 생각하니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평화 기도회가 제 삶의 등불이요, 지팡이요, 내가 의지하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노아교회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힘 있게 살아내는, 하나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온 가족들 되길 원한다.”라고 쓰셨습니다. 정영숙 권사님을 사랑해 주신 모든 분에게도 같은 축복이 있길 바라고, 좋으신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인생이 버겁다는 사실
이제 버거운 인생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광야의 혹독한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마음이 무너진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인도하는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 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6:3
사막은 샘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샘과 샘 사이 여정이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광야의 행군을 겪어보지 않은 우리는 그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인생의 어려움을 통해서 이해할 뿐입니다. 쉬운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삶이 버겁다는 것은 보편적 사실이고, 실존적 조건입니다.
문제는 어려움이 아니라 실존의 보편성을 넘어서는 과도한 언행입니다. 출애굽은 단순히 ‘장소’의 이동이 아닙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수많은 가족을 잃었습니다. 끔찍한 곳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애굽을 비극으로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그들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얄팍한 미화로 오늘을 부정했습니다.
부모님에게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냐고 악다구니를 해봤다거나, 당신 만나서 내 인생이 엉망이 되었다고 저주하거나, 너를 낳고 내가 미역국을 먹었다고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우리 모두 하면서 삽니다. 정죄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제가 이 일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가슴이 아픈지 알면서, 아니 그게 뻔히 보였는데도 자주 죄를 지었습니다.
누구나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마음 놓고 불평할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유익합니다. 그러나 불평과 원망이 습관이 되고, 삶이 되면 안 됩니다. 격한 운동 경기에 나온 사람이 힘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격의 문제가 됩니다. 삶이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삶이 힘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도한 피해 의식이나 자기 연민, 남 탓하는 마음, 본전 생각, 상대를 깎아내리는 행동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삶이 버거우므로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삶의 한 부분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오늘을 낮추기 위해 자신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를 잊었고, 과거를 미화함으로써 현재를 욕되게 했습니다.
말의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삶의 태도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감사하라고 쉽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정직하게, 눈을 떠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버거운 삶은 전체의 일부일 뿐이고, 그리스도인은 삶을 다른 시선으로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실만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너머에 있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이 선물이라는 진실
오늘 마태복음 20장에는 ‘포도원 비유’가 나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마태복음 20:1
집주인이 포도원 일꾼을 부르려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섰습니다. 그래서 하루 한 데나리온에 사람을 씁니다. 그리고 아홉 시에 나갑니다. 장터에 놀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들을 고용합니다. 그렇게 정오와 오후 3시에 나가서 일꾼을 얻고, 마지막으로 오후 5시에 나가 보니 아직도 서 있는 사람이 있어 그들을 부릅니다.
일을 마친 후에 청지기에게 일러 나중에 온 자로부터 삯을 주라고 시킵니다. 오후 5시에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자, 그보다 앞서 온 사람들이 더 받을 줄 알았습니다. 당연한 기대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이에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0:12
일찍 온 일꾼들이 투덜거릴 때, 주인이 대답합니다.
“당신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당신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
마태복음 20:14-15
예수님이 이 비유로 가르치신 것은 분명합니다. “첫째가 된 사람들이 꼴찌가 되고, 꼴찌가 된 사람들이 첫째가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마 19:30; 마 20:16) 이것은 탕자 이야기와도 연결됩니다. “언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었든지,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그들 모두에게 동일한 삯, 완전한 삯,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독일 성서 공회 참조).
탕자 이야기는 탕자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집을 지킨 첫째 아들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읽으려면 우리가 어디에 감정 이입을 하는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른 아침 포도원에 들어간 일꾼이 아니라 오후 5시에 들어간 일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진실입니다.
삶의 무거움, 은혜의 무거움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탕자의 첫째 형이, 좀 더 일찍 포도원에 들어간 일꾼들이 놓친 진실은 다 하나입니다. ‘나는 자격이 있다’라는 태도로 삶을 사는 순간 은혜의 자리에 공로와 자기 의가 들어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널리 회자되는 능력주의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내가 성공한 것은 내가 열심히 한 결과다’, ‘나는 누릴 자격이 있다’ 우리는 세상을 자기 중심적으로 절대화 할 자격이 없습니다. 또한 어떤 인간도 정의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삶이 버겁더라도 마음이 꼬여서는 안 됩니다. 뒤틀린 마음으로 세상의 중심에 서지 않도록 서로 돌봐야 합니다. 피해자로 살지 마십시오. 본전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인생이든지 남의 인생이든지 깎아내리지 마십시오. 누군가는 그 삶이 구원받고, 어떻게든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애를 씁니다. 혹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생명과 삶을 사랑하십니다. 어떤 인생도 부정하지 않기로 저와 함께 다짐하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은 버겁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삶에는 선물의 영역이 있고, 우리는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간 일꾼입니다. 이것이 생생한 진실입니다. 삶의 무거움도 알고, 은혜의 무거움도 알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길 바랍니다. 나중에 온 사람들과 은혜의 나라에서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의 복된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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