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책갈피/빅터 프랭클 (3)
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를 읽고, 큰 감명을 받고 두 번째 빅토르 프랑클을 읽었다. 모니터에 '보란 듯이는 진리가 아니다' '단번에 되는 것은 없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를 써두고 가끔 읽는다. 실존주의 철학은 이런 거다 저런 거다 개념을 설명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하지만, 내가 오늘을 살고자 써두었던 이 문구들이 내가 이해하는 실존주의 (철학)이다. 의미에 목말라 장밋빛 내일로 순간이동하고 싶은 나를 오늘에 붙잡아 둔 문장들이다. 하루를 다 살아야 내일을 사는 법인데 결혼하기 전에는 그걸 머리로만 알았다. 시계가 아니라 애들이 다 자야 하루를 마치는 아내를 보고 많이 배운다. 이런저런 고상한 통찰들을 가지고 아무리 씨름해도 하루를 책임감으로 여닫는 엄마를 뒤에 둔 나는 약한 사람(아빠)이다. 내 삶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
'나는 ○○에게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될지 묻고, 그 물음에 응답해갈수록 목마름은 더해 갔다. 왜냐하면, 정리되면 될수록 내가 바라는 '그 어떤 사람'이 자신을 펼쳐갈 장소의 부재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 될 거야. 이제 많이 정리됐어.' 이런 확신이 생길수록 내 확신을 쏟 아낼 장소를 만나야 한다는 욕구가 강해졌다.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가장 독이 되는 것은 현실 부정이다. 운명적 만남을 꿈꾸고, 운명적 장소를 꿈꾸면 운명적으로 현실을 거부하게 된다. 사실 내가 정리한 '어떤 사람'은 삶으로(에서) 통합된 존재가 아니고, 지성으로 만들어 낸 머릿속에 사는 존재일 뿐이다. 삶과 분리된 매력적인 아바타에 그치지 않는다. 아바타는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를 요구했다. 어리..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거나 이야기할 때, 당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 한 저명한 연구전문 심리학자는 강제수용소의 이런 삶을 ‘일시적인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마디 더 붙이자면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빅터 프랭클 127. 활동가란 옷을 입은 지 어느새 일 년이 됐다. 신학대학원을 마칠 무렵 결론처럼 내가 바란 것은 ‘시민운동’이었다. 출발은 아주 단순하다. 나는 근본주의 기독교인으로만 남는 게 싫었고, 이웃과의 관계를 새롭게 그리고 더 건강하게 하고 싶었다. 내 신앙은 나와 내 친구들에게는 너무 친절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