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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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일

한, 정훈 2012. 3. 15. 16:50


며칠 뒤에 이틀 차이로 처제랑 아내 생일이다. 생각난 김에 구글 캘린더에 기록해 두려고 마우스를 만지작거리다 잠시 멈추게 됐다. 반복 빈도, 반복 주기, 시작 날짜 그리고 종료일...? 종료일. 종료일이라는 단어 앞에 잠시 입술을 깨물고, 눈을 내리 깔아 본다. 괜히(?) 코끝이 찡하다. 깃털처럼 가볍지 못한 것도 문제고, 바다처럼 무겁지 못한 것도 문제다. 갑자기 아내도 보고 싶고, 아이들도 보고 싶다. ... 오늘부터 사순절이다. 요사이 느낀다. 영혼을 위해서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게 자꾸만 어렵고 귀찮다. 내가 정말 내 영혼의 가르침을 따라 살고 있나? 겸손의 몸짓을 덧입은 교만한 몸뚱이를 있는 힘껏 밀쳐 낸다. 그렇게 악몽 같은 자기기만에서 깨고 나니까 (치명적인 흠이 몇 가지 있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위로와 평화가 찾아든다. 흠이 있기에 구원이 숨쉬고, 종료일이 있기에 눈물겹게 고마운 오늘이 살아 있는 거다. 라고 말하니까 나도 제법 좋은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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