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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겪는다

한, 정훈 2012. 3. 12. 23:37

며칠 깊은 생각과 혼란을 겪으면서 마음이 조금 정리됐다.

결국 인생은 겪어야 하는 거다.

오늘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앞당길 수는 없는 거다.

사람들 앞에서 불같이 화를 내 본 지가 참 오래됐는데, 오늘 지하철에서 오랜만에 화를 냈다.

예전 같으면 하루 종일 스스로를 괴롭히고, 힘들 게 했을텐데 다행히 오늘은 쉬이 넘어 갔다.

맡은 글을 쓰느라 오후 내내 컴퓨터 앞에서 집중했더니, 염통이 다 쪼그라든 것 같아서 퇴근하니 몸이 너무 무거웠다.

집에 들어가기가 어찌나 싫은지 집 앞에서 볓 번 쉼호흡을 하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하루종일 나를 기다린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쉬고 싶은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매운 비빔면을 왼손으로 비비고, 오늘손으로 비벼서 먹고,

그래도 배가 차지 않아 계란 후라이 부쳐달래서 바가지에 밥을 썩썩 비벼먹었더니 힘이 났다.

그래서 두 시간 동안 설겆이 하고, 싱크대 닦고, 걸레질 하고, 가스렌지에 내려 앉은 더께를 쓱쓱 닦아 냈다.

후들후들 팔이 다 저린다.

왠지 후련하다. 바람쐬러 잠시 나왔는데 아내가 고맙다고 카톡 보냈다.

지름길, 돌아가는 길이 없고, 피하는 게, 도망치는 건 길이 아니다.

오늘은 다 겪어야 한다.

지금 내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단 번에 나를 넘어설 수는 없다.

길이 아닌 데로 가지 않으면서 뚜벅뚜벅 걷다보면 오늘 꿈꾸던 내가 내일에서 오늘로 나를 찾아 걸오 오리라.

사람이 참 아름다울 때는 화려한 조명 받으면서 승승장구 할 때가 아니라,

오늘을 다 겪고 걸어가야 할 길을 뚜벅뚜벅 걸어서 역경을 딛고 다시 피어날 때 아닌가 싶다.

겨울을 견디고 피어나는 꽃은 생명으로 피어나는 거다.

못 견디게 싫은 자기 자신을, 다 꺼져버린 불씨가, 앙상한 잎사귀가, 추운 겨울을 다 겪고 나서

피어날 때, 겨울은 무덤이 아니라 신의 품 안이 었음을 깨닫는다.

나비가 되려고 몸부림 치는 애벌레를 돕겠다고 손을 댔다가는 이내 죽어버린다.

제 힘으로 일어나야지, 남의 도움 받아서는 나비가 될 수 없고, 봄을 피어나게 하는 꽃이 될 수 없다.

아, 조급한 마음이 얼마나 나를 망치는지...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한다.

그래 내일도 힘들겠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꺾이지 않으리라.

오늘을 겪기에 내가 예수 안에, 예수가 내 안에 있다.

지겨울수록 버거울수록 봄이 더 찬란하리라.

겪겠다. 온새미로 이 겨울을. 앙상해서 고마운 이 겨울이 향기로 생명으로 뒷걸음 칠 때

다시 말하리라.

오늘이 아름답고, 끝내 피어나는 꽃이 봄이라고,

겨울을 걷는 나그네를 사랑이 감싸안고 있었다고,

그래서 다 같이 피어나자고. 그 때를 기다리자고.

나, 그래서 오늘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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