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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충격, 문학의 자리

한, 정훈 2013. 12. 13. 19:03

그래서 카뮈는 "문명의 단 한 가지 진정한 진보, 인간이 때때로 집착하게 되는 진보는 의식적인 죽음의 창조이다"라고 말했으리라.
'의식적인 죽음'이란 바로 고대인들이 그들의 생이 끝나가는 자리에서 눈길을 딴 곳으로 돌리지 않고 전신으로 운명과 정대면하며 죽음의 전체를 공포 없이 껴안고 청춘을 탈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전면적인 죽음의 의식만이 마지막 조약돌, 마지막 생명의 이온을 영원한 현재 속에 복귀시킨다.
의식적인 죽음을 창조한다는 것은 나와 세계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죽음으로부터 위안받지 않는 일이다. 질병처럼 죽음에 서서히 길들지 않는 일이다.

우리를 삶으로 치달리게 하는 것은 물이 아니라 우리들 영혼 속에 불타고 있는 영원한 '갈증'임을. 생명은 부유한 자의 소유가 아니라 위로받지 않으려는 자, 영원함 속의 굶주림을 간직한 자의 것임을.
김화영 <행복의 충격> 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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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관성에 의해 살아간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은 영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 또는 사회가 진보할 가능성은 의식적인 죽음의 창조 이외에는 없지 않나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런 말을 한다. '그곳에서는 아직도, 행복은 습관이 아니라 충격이다. 행복은 이 땅 위에 태어난 우리의 하나뿐인 의무다'

옮겨 적은 구절에 숨어 있는 '죽음의 창조', '청춘의 탈환', '영원한 갈증' 이런 단어를 만나는 게, 책 읽는 기쁨이고, 문학이 주는 충격이다.

좋은 책, 또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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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영원한 갈증'인 종교성은 나를 이끌어온 힘이며, 동시에 목마름이다. 그러나 제도화된 종교는 죽음의 직면을 봉쇄하고, 갈증 해소보다는 삭막한 표정으로 나를 대할 때가 잦다. 이런 형편일 때, 문학은 종교성을 탈환할 수 있게 돕는, 죽음으로서의 영원한 갈증을 직면할 수 있게 돕는 공간이다. 종교성과 종교의 어름에서 문학의 자리가 시작되고, 새로운 언어를 찾아야 한다는 목마름이 생겨나고, 또 시작된 목마름은 그 자체로 지지받는다.

창조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죽음을 직면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긍정하기 위해, 내게는 문학의 자리가 있다. 영원한 갈증을 갈증으로 안고 갈 수 있게 한다. 문학의 자리는, 곧 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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