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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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인 너무도 종교적인

잘못된 기도

한, 정훈 2014. 12. 28. 22:31

필요할 때만 찾아서 죄송합니다...


아니다. 필요할 때만 찾아도 된다. 윤리 없는 구원이 고삐 풀린 망아지일지라도, 그래도 구원은 윤리가 아니다. 부모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식의 몸을 거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데도 끝까지 찾지 않는 자식이 부모의 근심이다. 자립은 관계의 거부가 아니다. 역설을 품어 안아야 한다. 주체가 되며, 또 주체가 되길 거부해야 한다.


인생은 이 냉탕과 온탕을 적절히 오가는 방법을 연습하면서 몸에 기억되도록 새기는 과정과도 같다. 언제 주체가 되고, 또 언제 주체가 되길 거부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철이 드는 것이다. 인생의 지혜란 것이 대단한 게 아니다. 언제 품어 안을지, 언제 혼내야 하는지 아는 일이 철이 드는 일이다. 주인처럼 살 때가 있고, 손님처럼, 또는 나그네처럼 살 때가 있다. 생산하고 창조해야 할 때가 있고, 받아 누리고 소비해야 할 때가 있다.


손님이 되고, 나그네가 되고, 탕아가 되어 부모를 찾을 때, 그래야만 하는 때가 있다. 그러니 이제 필요할 때만 찾아서 죄송하다는 기도는 하지 않아도 된다. 혼자서 도저히 안 될 때, 누구도 손잡아줄 이가 없을 때, 부모가 꼭 필요할 그때, 모든 체면을 거절하고 찾고, 구하고, 두드리길 바라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나는 늘 집 나간 못난 자식 예리성(曳履聲)이 들릴 때, 버선발로 뛰어 나간 그 아버지에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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