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여전히 어둡더라도, 그래도 한 번 더 본문

종교적인 너무도 종교적인

여전히 어둡더라도, 그래도 한 번 더

한, 정훈 2015. 1. 1. 20:43

어제 아내랑 송구영신 예배 마치고 집에 오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성탄절이 되고, 새해가 되도 들뜨는 마음이 없어. 좋지 않다고 생각돼." 아내는 자신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가 헌신하고자 하는 삶의 리듬 곧, 교회력과 삶의 간격이 너무 멀어 양쪽 다 발을 디디고 설 수가 없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못하고, 어디서나 나그네처럼 살고 있다.


이번 주부터 다시 설교한다. 성탄 후 2주 말씀은 예수의 의미와 기뻐하라는 메시지인데, 마음이 가라앉아 좀처럼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누군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헨리 나우웬이 아닌가 싶다. 사회학자 앞에서 말문이 막혀 버릴 때가 있다는 말이었다. 현실을 볼 때, 신앙의 힘이 무가치해 보일 때가 있다는 뜻으로 읽었다. 2015년 새해가 되었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또 엄마 손을 놓친 아이처럼 기억을 놓치고 헤매고 있다.



성경을 펴놓고 한참 딴짓을 하다가 <기독교사상>에 실린 김기석 목사님의 글을 읽고 힘을 얻는다. '장벽 같은 현실 앞에서' 지치기 마련이다. 말라기 시대 이스라엘 사회를 지배한 것은 '낙담과 냉소의 분위기'이다. 그러나 '악인이 뿌리째 뽑히거나 남김없이 태워질 날'이 반드시 온다. 현실을 모르는 또는 현실을 외면하는 종교의 철없음과 현실을 잘 알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에 우리를 비끄러매는 철든 종교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내 몫이 있고, 그걸 피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글에 인용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문장을 붙잡고, 약해진 마음을 다시 한 번 일으켜 본다. "우주의 윤리적 포물선은 길지만, 그 방향은 정의 쪽으로 굽어 있다."(게리 하우겐 <정의를 위한 용기> 60). 그리고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시편 37: 23-24, 새번역)는 문장에 하나님 마음이 있다고 믿고, 나를 붙잡아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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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막내 녀석 생일입니다. 1년 동안 제 몫을 다한 서빈이와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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