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2025(C)성령강림 후 열세 번째 주일 노아교회 설교(+어린이) 본문
한밤 중에 온 남자
오늘은 성령강림 후 열세 번째 주일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8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함께 읽은 누가복음 14장이고, 내용은 은혜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도 먼저 화분 이야기를 나누고, 그다음 어른들을 위한 짧은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화분 이야기가 이제 5편이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 동화 화분 이야기 5편의 제목은 '한밤 중에 온 남자'입니다. 오늘은 조금 무서울 수 있어요. 시작합니다.





다섯 번째, 화분 이야기
화분이 병들었습니다. 민수는 속상합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화분과 관계가 깊어졌고, 또 화분을 신뢰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민수가 속상해 하는 것을 알고, 엄마와 민지는 민수와 함께 화분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어요. 인터넷도 찾아 보고, 여러 가지 조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민수와 가족들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어요. 민수는 기운이 없고, 우울했어요.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때, 갑자기 화분이 회복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완전히 회복했어요. 민수는 엄마와 민지가 함께 노력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정말로 노력 때문이었을까요?
어느 날 새벽 한 남자가 민수의 방문 앞에 서 있어요. 그러다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부엌으로 갔어요. 거기서 무언가를 뒤적거리다가 집어들었어요. 그리고 다시 민수 방 쪽으로 갔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어요. 민수가 깨지 않도록 조심했어요. 그리고 이 남자는 천천히 창문 쪽으로 가서 부엌에서 가져온 물건으로 화분 앞에 섰습니다. 이 남자는 누구일까요?
이 남자는 민수의 아빠예요. 민수 아빠는 꽃 도매를 하는 식물 전문가예요. 며칠 전 민수 방 화분이 병든 것을 보고, 며칠 전부터 바이오 살균제를 화분에게 주고 있었어요. 칼로 줄기에 조그만 구멍을 내고, 거기에 주사를 놨어요. 이런 주사를 줄기주사(수간주사)라고 해요. 민수 아빠가 가족 모르게 화분의 병을 치료한 거예요.
어린이 여러분, 민수는 결국 아빠 때문에 화분이 나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요?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어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도 이와 같아요.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어요. 우리는 다 알고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믿는 거예요.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세상을 전복시키는 가치
이제는 어른들을 위한 메시지를 나누겠습니다. 누가복음 14장은 안식일에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하나님 나라의 역전된 가치관을 가르치는 본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겸손이라는 주제가 두드러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하게 겸손하라는 말씀 이상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여기서 시작하겠습니다. 겸손은 무엇일까요? 상석에 앉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일까요? 자기를 비하해서 자기 신분보다 낮은 자리를 선택하는 것일까요?
겸손은 계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모두 거래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모든 가치는 거래의 가치에 의존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 한 번씩은 들어봤고, 또 사용해 봤을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이 세상이 주고받는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면서도 받을 것을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물건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태도에도 적용됩니다.
겸손은 이런 거래의 세상을 전복시키는 가치입니다. 계산은 거래의 세상의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가르칠 때 예수님은 거래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래의 세상을 넘어선, 즉 계산하지 않은 행동이 복된 일이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핵심 구절은 13-4절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가르침을 통해서 세상을 전복시키는 하나님 나라의 전복된 가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을 불러라. 그리하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4: 13-14
은혜의 본질
여러분은 자식이 여러분의 사랑을 다 알기 원하십니까? 자식은 부모님의 사랑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알아서는 안 됩니다. “알면 다칩니다.” 부모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면 자식은 견딜 수 없습니다. 은혜는 계산의 세상 밖의 일이므로 자신이 받은 사랑을 갚으려는 자식은 압도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살면서 한두 번은 부모님의 사랑을 이해할 때가 있습니다. 깨달음의 순간인 것이죠. 어떤 때인지 저마다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은혜의 깨달음의 시제는 언제나 과거형입니다. ‘은혜를 받고 있다’가 아니라 ‘은혜를 받았구나’입니다. 내다볼 때가 아니라 돌아볼 때, 감춰졌던 은혜가 드러납니다. 받을 때는 은혜인 줄도, 사랑인 줄도 모르다가 알게 되는 순간에 그동안 자신이 은혜로 살았고, 사랑받으며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왜 세상을 전복시키는가? 갚을 수 없는 사람을 초대하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미련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미련한 사람들이 복되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계산을 멈춘 사람들의 선의에 의해서 이 세상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미련한 사람들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계산을 멈춘 사람들의 선의를 깨달은 사람들이 깨달음과 함께 갖게 되는, 갚을 수 없는 은혜에 대한 부채 의식으로 다시 갚을 수 없는 사람을 초대하는 행동이 발생합니다. 세상에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자신이 갚을 수 없는 것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때 보이지 않던 은혜가 보이고, 없던 은혜가 출현합니다. 이것이 은혜의 본질입니다. 부모님께 받은 은혜는 다시 자식에게 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갑니다. 받은 것이 없는 사람은 줄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그 사랑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그 사랑이 한이 없다는 사실에 압도됩니다. 받아보고 깨달은 사람만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새롭게 발견되기 원하고, 동시에 그 은혜를 되돌려 드릴 수 없음으로 무거워지기를 바랍니다. 그 부채 의식이 거래의 세상을 전복시키며 다른 이를 초대하는 삶으로 바뀌기를 기도합니다. 갚을 수 없는 사람을 초대함으로써 빚진 마음에서 해방되고, 삶의 의미와 보람을 충만히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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