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교회력 본문
저는 교회력에 관심이 많습니다.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정용섭 목사님(http://dabia.net/xe/)의 설교 비평을 읽은 후 부터입니다. 여러 편의 설교 비평을 묶어 책으로 냈는데 <설교의 절망과 희망>, <속 빈 설교 꽉찬 설교>,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세 권입니다. 설교 비평을 읽고, 두 가지를 얻었습니다. 하나는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 모새골 공동체의 임영수 목사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두 목사님 설교를 내려받아서 성실히 들었습니다. 제 신앙과 신학을 빚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미 있는 수확은 교회력(예배력)에 대한 관심입니다. 개신교 신자, 그중에서도 젊은 층의 개신교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오히려 가톨릭 신자 수가 크게 늘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종교에 대한 불신에서 가톨릭만이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과 개신교- 및 타 종단-의 실망스런 모습에 대한 반사이익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경환 신부님이 파악한 가톨릭 신자 증가 원인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①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전례 의식과 문화 예술 등에서 느껴지는 엄숙함
② 개인 성찰을 강조하고,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자유로움
③ 독신으로 봉헌된 삶을 사는 사제, 수도자의 상징성과 이들에 대한 신뢰
④ 체계를 갖춘 조직성, 전체가 하나의 교회라는 일치성, 이를 바탕으로 한 재정 투명성
⑤ 사회 복지 활동 등 세상 낮은 곳을 돌보며 섬기는 모습
⑥ 인권, 사회정의 활동 등을 통해 세상을 일깨우고 바른길을 제시하는 모습
⑦ 타 종교와 한국 문화 전통에 대한 포용적인 태도
<한국 종교를 컨설팅하다(모시는 사람들, 2010)>
그중에서도 ①번과 ④번이 눈길을 끕니다. 저는 성결교단에서 나고 자랐는데, 성결교 전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디 가나 다 순복음 교회 같다고 하면, 물론 지나친 이야기겠지만 실제로 제 느낌과 경험은 그렇습니다. 또 WCC 기간에, 통성기도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선전하려던 꿈은 외면당했습니다. 문화가 달라서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열광적 기도 역시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젊은 사람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교회다움을 설명하려는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종교다움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상징과 의례를 고민해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집회 방식으로는 예배의 깊이를 끌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통과 교회력(예배력)에 관심이 많습니다. 뭐든지 간단하게 또 빠르게 하려는 허약한 시대정신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전례, 직관과 상징에 민감한 다음 세대를 위한 예술의 접목, 한없이 가벼운 예배 분위기를 엄숙하게 할 수 있는 강요되지 않은 긴장감에 관심 있습니다.
전례를 강화하는 것은 외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형식 없음을 유일한 형식으로 고집하는 자유에 대한 뒤틀린 인식이 문제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조금씩 교회력(예배력)을 적용해 보려고 애쓰던 중에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뒤로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 사용문화 확산과 전통문화로부터 한국적 예배언어 개발 가능성을 찾는 <성실예배교육문화원> 일을 조금씩 돕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주현절 4주입니다.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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