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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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과 적

한, 정훈 2014. 12. 9. 21:12
"싸우지 않고 굴복시킨다."는 전략은 약자에게 유리한 것이다. 권력과 자원, 물리력 모든 면에서 열세인 약자는 머리를 쓰는 수밖에 없다. 전략, 논리, 나아가 인간적 감화로 상대방을 자기 모순에 빠뜨리는 것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서로 당연하게 설정하고 있던 전선(戰線)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다. 기존의 사고방식, 싸움 주제를 생소한 것으로 만들어 적을 인식 분열('멘붕') 상태로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 약자는 자신이 약자라는 인식과 더불어 자각이 다른 앎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이 약자의 인식론적 특권이다. 강자는 자기 생각을 약자에게 투사하지만, 똑똑한 약자는 두 가지 이상의 시각에서 자신과 상대방을 모두 파악한다.
전선을 구획하는 자가 이긴다. 누가 먼저 어떤 선을 긋느냐. 누가 먼저 생각하는 방법을 창조하느냐. 기존 전선에 걸려 넘어질 것인가, 내가 룰을 만들 것인가. "다르게 생각하라." 강자가 다르게 생각하면 양극화를 만들고, 약자가 다르게 생각하면 세상을 이롭게 한다. 기존의 틀에서는 아무리 좋은 전략도 필패다. 내가 '쉽고 익숙한' 말을 경계하는 이유다.

(...)

완전한 승리는 적의 언어를 통제하는 것이다. 문제는 표현의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표현할 언어(생각)가 없는 것이다. '일베'와 '할 말은 하는 신문'이 만끽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권력이다.
나의 진짜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발상의 전환으로 매복하고 있어야 한다. 쉽지 않다. 여성은 '적'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은 '적'처럼 살고 싶어 한다. 탈식민 방법이 필요하다.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다, 손자병법_손무' 124-7.

1. 님

읽는 내내 그림책 <키아바의 미소>를 생각했다. 읽은 후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얼마 전에 읽은 천정근의 <연민이 없다는 것>에서 읽은 한용운의 시 <나룻배와 행인>이 생각난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돌어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한용운은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했다. 나를 짓밟고, 뒤돌어보지도 않고 가는 이가 님일 수도 있겠다. 나를 낡도록 기다리게 하는 이가 님일 수도, 그럴 수도 있겠다.

2. 적

'내 적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를 적으로 대했나? 그들이 정말 내 적이어야 했나?' 내가 적으로 생각했던 사람 중에 적이 아닌, 또 적이 아니어야 할 이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나 자주 적이 아닌 이와 다투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또 그동안 확실히 적으로 인식했던 대상이 실은 그냥 스쳐 갈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사실에 부끄런 마음이다. 예수는 어느 때 가까이 두는 제자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윽박지른 적이 있다.

다투어야 할 대상에게는 목을 매고, 넘겨야 할 사람은 끝내 지나치지 못하고 기어이 멱살을 움켜잡았다. 기어이 마음을 들쑤시는 말로 상처를 냈다. 아아.

3. 그러니까

2년간 접어 둔 종이를 이제 바르게 펴보려고 손으로 꾹꾹 눌러봐도 태죽이 남아 며칠 마음이 거시기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하루 이틀 미루다가 오늘 소식 전합니다. 서울로 이사 와서 지난주부터 한국회복적정의협회(KARJ) 일을 보고 있습니다. 교회는 제 아내를 생각해서 장인어른 계신 교회로 정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출퇴근을 한 시간 반씩 하니까 좋은 점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책 한 권은 출퇴근 길에 읽게 됩니다. 지난주에 읽은 책 천정근 산문집 <연민이 없다는 것>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배운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읽는 <정희진처럼 읽기>도 재미있고 유익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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