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안녕(安寧), 광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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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3권)을 보면, 왜 사람들이 SNS를 하는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이런 나레이션(?)이 흐른다. "보이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보여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세상. 사람들은 왜 자기를 고백할까. (...) 위로받기 위해, 이해받기 위해, 나를 보여주는 사람들."
2년 만에 광주를 떠나 서울로 돌아왔다. 잘했나? 안을 향하는 이런 질문은 끝내 답을 찾지 못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한편으로는 꼭 읽어야만 하는, 지금 아니면 읽을 수 없는 책을 망설이다 덮어버린 느낌이다. 두고 온 광주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나 때문이다.
"거기서 살아."라는 말 위에 서 있었는데 지금은 발밑에 아무런 말도 없다. 그래서 솔직히 두렵다. 하지만 늘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확신이 없을 때, 자신이 좋은 사람 같지 않을 때, 여건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 그때도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책임질 각오는 돼 있다.
어쨌든 나는 위로받기 위해서, 이해받기 위해서 나를 보였다. 내가 과연 이해받을 만한 고민을 하는 건지, 위로받을 만한 슬픔을 겪고 있는 건지 궁금헸다. 그게 너무도 궁금했다. 나라는 이야기가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 그게 너무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나를 고백했다.
안다. 보편성 획득에 실패한 주관성은 늘 짐이 된다. 그래도 이제는 사람들 앞에서 잘 울지 않는다. 나이가 들었고, 애가 셋이고, 이제 막 지긋지긋한 사춘기 혹은 중2병에서 완쾌됐고, 확실성에 집착하지도 않으니까. 오랜만이다. 이런 느낌. 행복하게 나온 가족사진이 누구한테 미안하지가 않다.
나는 늘 "내가 이걸 누려도 되나?"라는 문자주의에 갇혀 있었는데.... 아이 셋과 저 셋을 키워낸 아내 때문에 많은 게 바뀌었다. 사진을 여러 장 올렸는데, 마지막 석 장은 유빈이 특집이다. 유빈이는 폼생폼사, 자신이 가장 빠르고 가장 힘이 세고 가장 멋있다고 확신하고 영웅을 좋아하지만, 정작 일그러진 영웅일 때가 잦다(https://www.facebook.com/titus178).
마지막 날 밤 화장실에 응가 하려 간 유빈이가 나든 아내든 부를 때가 됐는데 소식이 없었다. 아내가 "뭐해?" 하면서 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비명을 질렀다. 저 혼자 뒤처리를 해보려다가 완전히 실패했다. 손-과 손톱, 웃옷, 변기, 화장실 바닥, 온통 X을 묻혀 놨다.
애를 씻기고, 변기와 바닥을 닦고, 옷을 빨아서 걸어놓았다. '그래, 내 몫은 이 녀석이 제대로 뒤처리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돌보는 거다.' 녀석 티가 나를 놀리듯이 쳐다보길래 사진을 찍어뒀다.
어떤 마을에 의사가 한 명뿐이다. 이 의사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모두가 좋아한다. 굉장히 상냥하고, 친절하고, 따뜻하고, 너무나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병을 못 고친다. 그 의사가 좋은 사람일수록, 좋은 사람이면 좋은 사람일수록 결정적 절망에 가깝다.
나는 이제 약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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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광주에서 저는 잊지 못할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자기연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저를 위해 울지 않겠습니다. 제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견디며 서겠습니다. 강으로 바다로 흐르겠습니다. 기독교인이 돼 보겠습니다.
안녕(安寧),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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