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어마어마하게 멋진 삶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본문
샘과 데이브가 땅 파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이들은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으려고 땅을 판다. 샘과 데이브는 성실하지만 끝내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지 못한다. 그들은 늘 아쉽게 행운을 비껴간다. 한참 아래로 땅을 파다가 보물에 삽이 닿기 직전에 방향을 틀고, 같은 방향으로 조금만 더 파면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만나게 될 텐데 다시 코앞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바꾼다. 샘과 데이브는 결실 없는 노동에 지쳤고, 이내 깊은 잠에 빠진다. 대강 이런 줄거리이다. 처음 책을 읽은 후에 책 뒤에 해설을 찾았다.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 와닿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칼데콧 아너 상을 받았다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생각이 날 때마다 다시 읽었는데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뭔 애들 책이 이러냐." 하면서 이미 없는 걸 확인한 해설을 찾아 책을 뒤적거렸다. 없었다. 그렇게 그 뒤로도 몇 번이고 책 뒤에 ―혹시 겉표지에라도― 해설이 없는지 넘겨봤고, 심지어 이 글을 쓰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책장을 넘겼다. 역시 아무것도 없다. '칼데콧 아너 상이라는 것은 역시…'
해설이 있으면 좋으련만, 어쨌든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몇 번 더 읽어 보았다. 그러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도 늘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 직전에 자꾸 방향을 바꾸고 삶의 자리를 바꾼 것은 아닐까? 광주에 좀 더 머무를걸. 공부를 더 할걸. 애는 둘만 나을걸. 하면서 지난날을 되돌아봤다.
'그래 어쩌면,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닌가' 그동안 나는 샘과 데이브처럼 행운을 비껴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이 빗나간 자체가 인생인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땅속에 묻힌 것을 언제 삽 끝으로 툭 치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땅을 파는 동안은 이 방향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가 없으며, 그때그때 느낌과 생각이 바뀌고 판단을 하고 직감을 믿었다. 그래서 아쉽게도 많은 행운을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노동에 지쳐 곯아떨어진 샘과 데이브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만큼 생생하게―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다가 부드러운 흙 위에 털썩 내려앉은 후에 깨어난다. 그리고 잠시 얼떨떨해하다가 동시에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초콜릿 우유와 과자를 먹으러 집으로 간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가만 보면, 이들이 실제로 땅을 판 적이 없고 땅 파는 꿈을 꾼 것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 어쩌면 그냥 꿈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런데 꿈에서 이들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행운을 비껴간 것? 그것이 전부일까?
꿈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샘과 데이브는 '어마어마한 멋진 것'을 찾지 못했지만 떨어지고 떨어져서 깬 곳이 어둠의 심연이 아니라 부드러운 흙이어서 다행이고, 또 깨어난 후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라고 말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들이 찾은 것이 비록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은 아니지만, 함께 꿈을 꾸고 함께 잠에서 깨어난 둘이 함께한 멋진 "경험"이었으며, 무엇보다 초콜릿 우유와 과자가 있는 돌아갈 집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샘과 데이브는 행운을 비껴갔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샘과 데이브가 행운을 비껴간 것이 아니라거나 이제 행운보다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내일 다시 땅을 파면 분명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게 될 것이라고 근거 없는 긍정의 약속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번번이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비껴간다고 해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행운을 비껴간 부족한 우리 이야기에도 남은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어제 신륵사에 갔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찾아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보라고 이야기했는데, 십여 장 찍는 동안 네 명이 동시에 카메라를 쳐다보는 행운은 없었다. "여기 봐, 여기!"를 그렇게 외쳤건만. 또 그렇게 찍은 사진에 내 손이 들어갔다. 정신이 없어서 렌즈를 가리는 줄을 몰랐다. 식당 운도 없었다. 한 번은 찾아간 가게가 없어졌고, 그다음에는 영업시간이 아니어서 지나쳐야 했다. 이렇게 식당도 두 번이나 헛걸음했지만 닭갈비를 맛있게 먹었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이러면 좋겠다, 저러면 좋겠다, 방향을 전환하자는 제안을 늘 데이브가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집에서 내가 데이브 역할을 할 때가 잦은 것 같다. 어쨌든 사진 운도, 식당 운도 없는 날이었지만, 우리의 소풍과 가을 하늘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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