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2026(A)주님의 산상변모 주일 노아교회 설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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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A)주님의 산상변모 주일 노아교회 설교

한, 정훈 2026. 2. 14. 22:28

짊어지는 영광의 무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출애굽기 24: 12-18입니다.

 

출애굽기 24:12-18

12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가 있는 산으로 올라와서, 여기에서 기다려라. 그러면 내가 백성을 가르치려고 몸소 돌판에 기록한 율법과 계명을 너에게 주겠다."

13 모세가 일어나서, 자기의 부관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갔다.

14 올라가기에 앞서, 모세는 장로들에게 일러 두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돌아올 때까지 여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십시오. 아론과 훌이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이니, 문제가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들에게로 가게 하십시오."

15 모세가 산에 오르니, 구름이 산을 덮었다.

16 주님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엿새 동안 구름이 산을 뒤덮었다. 이렛날 주님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다.

17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는 주님의 영광이 마치 산꼭대기에서 타오르는 불처럼 보였다.

18 모세는 구름 가운데를 지나, 산 위로 올라가서, 밤낮 사십 일을 그 산에 머물렀다.

 

봉독자: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함께: 하나님 감사합니다.

 

먼저 인사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산상변모 주일입니다. 주님의 산상변모 주일은 예수님께서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난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이제 주현절은 마치고,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합니다. 참고로 올해는 45일이 부활절입니다. 수난으로 넘어가기 직전 가장 완벽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빛난 영광에 관해서 출애굽기 본문을 통해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산

이스라엘은 열 가지 재앙, 유월절, 홍해를 건너고, 마라의 쓴물,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의 생수, 아말렉 전투를 거쳐서 시내산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십계명을 받으면서 단순히 구원받은 백성이 아니라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후 모세는 마지막으로 새로운 계시를 받기 위해 하나님의 산에 오릅니다.

 

이제 여러 가지 상징을 통해 모세가 경험한 하나님의 영광이 서술됩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니, 구름이 산을 덮었다.

출애굽기 24: 15

 

주님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엿새 동안 구름이 산을 뒤덮었다. 이렛날 주님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다.

출애굽기 24: 16

 

영적인 관점에서 성스러운 산에 오른다는 것은 완전한 동경, 세속적 욕망의 방기(등지는 것), 최고 상태로의 도달, 부분과 제약에서 전체와 무한으로 상승하는 것(수직적 초월)을 의미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대표인 모세의 등정을 통해 압도적인 하나님의 현존에 돌입하는 단계를 맞이합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니, 엿새 동안 구름이 산을 덮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날 모세는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합니다. 후에 모세는 타오르는 불같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 사십일을 머물렀습니다. 구름은 하늘에 베일을 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상징합니다.

 

모세는 떨기나무에 붙은 불을 통해 처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주저했고, 그때 백성이 누가 보냈냐고 물을 때 뭐라고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이제 그를 보낸 이가 누구인지 완전한 영광 안에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이 모세를 불렀고, 이스라엘 백성을 새로운 미래로 부르시기 위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압도하는 영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영광의 무게

하나님의 산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뒤덮였습니다. 이때 쓰는 영광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카보드’(כָּבוֹד)입니다. 이 단어는 무겁다라는 뜻과 연관이 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벼운 빛이 아니라 존재를 압도하는 묵직한 실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영광의 무게를 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영광의 무게를 아는 것은 부르심의 무게를 아는 것입니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을 만유인력이라고 합니다.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지구 위의 물체가 지구로부터 받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사람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진짜 부르심, 진정한 만남은 무겁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은 우리 삶 전체를 묵직하게 요구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너의 일부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노래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영광의 무게, 곧 부르심의 무게를 아는 사람은 전부를 걸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과도한 요청을 하지 않는 것은 착하거나 소심해서가 아니라 전부를 걸고 마주 오는 여러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그런 실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헌신하는 주제는 다릅니다. 그것은 가볍지 않습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 제가 믿는 세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영광의 무게를 아는 것입니다.

 

내려 가자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그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다.

마태복음 17: 2

 

저는 여러 해 동안 주님의 산상변모 주일 설교의 제목을 지기 위해 핀 꽃이라고 짓고 복음서 본문으로 설교했습니다. 이제 곧 사순절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받기 전에 환하게 빛나셨습니다. 질 꽃이 왜 피어야 하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산상변모 주일을 지날 때마다 생명은, 인생은,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누군가는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실패를 무릅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언젠가 이별할 존재들을 키우고, 언젠가 시들 것들을 심습니다. 인간은 영원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확고한 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끝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여기에다가 초막을 셋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7: 4

 

모세는 왜 올라갔을까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내려가기 위해 올라간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모를 보고 초막 셋을 짓자고 한 제자를 예수님은 데리고 내려오셨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로 끝나지 않을 실패를 무릅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성공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런 사람은 영광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은 가벼운 것입니다. 영광의 무게를 아는 삶을 살기 위해, 실패로 마치지 않는 더 생명력 있는 삶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설 명절입니다. 가족이 모여서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 텐데, 성공이냐 실패냐 판단하고 가르지 마십시오. 주눅 들 필요도 없고, 우쭐할 것도 없습니다. 잘하는 게 있으면 못 하는 게 있고, 부족한 게 있으면 넘치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가족과 서로 격려하고, 더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 함께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삶을 다 걸게 하는 부르심을 듣기 위해 귀 기울이는 삶을 살자고 다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삶의 무게는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삶의 무게에 영광의 무게까지 얹으면 무너져내리는 것 아닌가?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의 삶이고, 우리의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끝까지 짊어지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충만한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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