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2026(A)사순절 첫째 주일 노아교회 설교 본문

선악과를 먹지 않는 신앙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창세기 2: 15-17; 3: 1-7입니다.
창세기 2: 15-17; 3: 1-7
15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16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1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
4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5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봉독자: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함께: 하나님 감사합니다.
먼저 인사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오늘은 사순절 첫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40일입니다. 지난 수요일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실제로는 46일 전에 시작합니다. 이 기간에 포함된 주일이 제외됩니다. 이유는, 주일은 본래 부활을 기념하는 날, 작은 부활절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창세기 2-3장 말씀이고, 함께 읽은 대로 에덴동산과 선악과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병행 본문인 복음서 본문은 마태복음 4: 1-11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받는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유혹을 모티프로 합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이 유혹에 넘어갔고, 예수님은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큰 그림을 기억하면서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일과 한계
하나님께서 에덴에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에덴동산은 결핍되지 않은 세상입니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에덴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온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한계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람은 일을 부여받았습니다. 동산을 돌보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일을 주셨습니다. 최초의 일은 저주가 아닙니다. 학교 이야기를 듣다 보면, 꿈이 뭐냐는 질문에 학생들이 부모님한테 ‘카페를 물려받는 것’, ‘건물주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부는 인간의 아주 원초적인 욕구에 가깝지만, 노동 없는 삶을 견디는 것이 정말 이상적인 삶인지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일 문제는 지금 여기서 자세하게 다룰 시간이 없으므로 이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원칙은 사람에게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금령이 있습니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 2: 16-17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성적인 죄나 단순히 윤리적인 선이나 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악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란 포괄적인 뜻으로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선악은 ‘모든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표현하면, 모든 것을 알게 되는 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추어진 것이 없고, 속속들이 아는 분은 한 분 뿐입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전지한 존재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창 3: 22,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좀 더 우리 삶과 연결해서 다시 표현하면,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인생이 쓸모 없게 됩니다. 매번 지혜롭고, 정확하고,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통해 더는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지 않게 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게 된 사람입니다. 인생의 고통이 ‘모름’에 있지만, 모르기 때문에 인생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통해 사람에게 한정된 지식을 갖는 한계를 정하셨습니다. 한계라는 사람의 조건이 역설적으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만드는 핵심적인 원칙이라는 것을 에덴동산 이야기가 가르쳐줍니다.
자기보다 큰 것
잠시 마태복음 말씀을 기억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십니다. 거기서 간교하고, 교활하면서 동시에 영리한 이 미묘한 뱀, 악마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세 가지 시험을 받습니다. 첫째,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시험, 둘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 셋째, 악마에게 엎드려 절 하라는 시험입니다.
세 가지 시험 제각기 의미하는 바가 있지만, 특히 처음 두 시험은 자기를 증명해 보라는 시험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시험을 거절합니다. 우리가 보통 말씀으로 이기셨다 표현하는데, 오늘 맥락에서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증명하는 것을 ‘모름’의 영역으로 남겨두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며 우리의 구주가 되셨지만, 악마의 유혹 앞에서 자발적 한계를 유지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유일한 경배의 대상, 모든 세상의 구원자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선언한 셈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아들이지만, 스스로 낮아지셔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셨습니다.
사람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만, 그 가능성을 잘못 쓰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더 큰 것이 필요하고, 거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가 목적이 되고, 삶의 주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자기 이상의 영역을 늘 ‘모름’의 영역, 선택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두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신앙의 원칙입니다.
광야에서
마태복음 4장에서 ‘유혹하다’, ‘시험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페이라조’(πειράζω)입니다. 악마가 걸려 넘어지게 할 때는 유혹이지만, 이겨내면 시험을 통해 굳세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쓰는 표현으로 ‘위기가 기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죄는 실패한 시험이고, 반대는 성공한 유혹, 곧 유혹을 이겨낸 것입니다.
유혹이라고 하면 각자 떠오르는 것이 있겠지만, 오늘 한 가지 구체적으로 나누고 싶은 것은 ‘모름’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첫 사람이 선악과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을 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을 가졌다는 사실의 방증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합니다. 어떤 때는 자기 자신의 하나님이 되려고 하고, 어떤 때는 자식의 하나님이, 어떤 때는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타인은 모르는 존재로 남겨두지 않고, 모조리 알고 싶어하고, 평범한 인간 이상의 시선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손에 쥐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죄’입니다. 인생이 어려운 이유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인생을 알게 되면 인생이 쉬워지나? 그럴 겁니다. 그러나 쉬운 인생은 하나님이 바라는 인생이 아닙니다.
여러분 어떤 영역에 전문가가 되려면 보통 몇 년 정도는 그 일을 해야 할까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10년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밖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 그러나 꽤 많은 사람의 공통된 모습이 3-4년 만에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람입니다.
저도 전도사 시절에 그런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비난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도 아니면서 매번 조언하고, 가르치려 하며, 충고하는 목회자가 너무 많습니다. 신앙적인 부분이 아닌 문제로 사사건건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럴 때마다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구도의 축소판이 형성되는 것에 큰 문제의식을 느낍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며 말씀 드립니다. 우리는 몰라야 합니다. 모르는 부분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남의 일에 관심 갖지 마십시오. 자식이라도 너무 자주 충고하고, 가족 같아도 사사건건 개입하면 안 됩니다. 사람에게는 자기 ‘바운더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큰 존재를 인식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악과를 먹지 않는 신앙입니다. 그것이 시험을 이긴 예수님의 순종입니다. 자발적으로 한계를 갖는 신앙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육사의 시 「광야」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모든 산맥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은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광야는 접근이 금지된, 개척이 어려운 땅입니다. 어느 때나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고, 진리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한계를 돌파하고,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이 중요하고,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믿고, 또 천지개벽 할 역사의 전환을 마음껏 상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패를 무릅쓰고 성실하게 도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광야의 주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약속의 땅에 도달하지 못한 곳입니다. 척박하여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는 열악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을 걷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르는 것은 진짜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안다고 자만할 때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광야 길이 자기보다 더 큰 것을 만나는 소중한 인연의 시간이 되길 바라고, 저와 여러분의 삶이 우리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는다는 진실을 날마다 되새기는 사순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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