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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건강한 가족은 아픈 사람이 없는 가족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보살피는 가족이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일단 그 사람 중심으로 일상이 재구성되는 게 당연하다. 우선 아픈 사람을 보살피고 건강한 사람들이 수고하는 게 좋다. 가끔 아픔을 숨기고, 쉬쉬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사회든 단체든 개인이든 안쓰럽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는 상처가 있지만 돌보지 않으면 깊어지는 상처도 있다. 아픔이 있다는 건 어찌 보면 살아 있기에 지극히 당연한데, 아픔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댄다. 이 꼿꼿한 욕망-완전에 대한 왜곡된 욕망-때문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는가? 바람이 불 때는 흔들려야 아예 꺾이지 않는다.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
홍보나 설득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어떤 분들은 페이스북에서 양해를 구하고 욕도 쓰고 그러던데^^;; 영화 보시기를 권합니다. 시간이 상처를 아물게 한다고 하지만 어떤 상처는 그럴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됩니다. 무거운 영화 보는 걸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거 압니다. 저도 어제 이 영화보고 사실 무서웠습니다. 그렇지만 내면을 파괴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지배체제의 모순과 마주했을 때의 불편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살면 부자 될 수 있다고 하죠? 세상이 나아지려면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된다고 하죠? 거짓말입니다! 지배체제를 굳세게 하고,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거짓 신화입니다. 아무리 성실히, 열심히 해도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불리한 사람이 있고, 어쩔 수 없는 그 희생은 왜 늘 힘없는 국민..
이는 우리가 “하나님은 무엇인가?”를 말할 수 없고 “하나님은 무엇이 아닌가?” 만을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부정 신학(negative theology)의 부정의 길(via negationis)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비가 더 잘 전달되는 것과 같다(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60). 때로는 할 수 없는 것을 가려낼 때 해야 할 일들이 분명해 질 수 있다. 시간은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공간의 거리를 극복할 수는 있어도 과거를 되찾거나 미래를 파헤칠 수는 없다. 사람은 공간을 넘어서지만, 시간은 사람을 넘어선다. … 누구도 순간을 독차지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은 나에게 속해 있음과 동시에 모든 살아 있는 사람에게 속해 있다. 시간은 공유의 대상이고, 공간은 소유의 대상이다( 177-178)...
다시 이 곡 찾아서 차 안에서 귀 기울여 들었을 때, 가사가 영락없는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했다. 결혼할 때 프러포즈하려고 연습한 ‘아이처럼’ 들을 때와 느낌과 같다. 멜로디도 좋다. ‘좋다’ 생각하면 무한반복해서 듣는 버릇이 있어 여러 날 차 안에서 많이 듣고 많이 불렀다. 때를 기다리며. 며칠 있으면 결혼기념일이다. 공교롭게 결혼기념일과 중요한 일이 겹쳐서 나중에 휴가를 하루 얻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어머니가 아이 봐줄 테니 좋은데 가서 식사라도 하고 오라면서 용돈을 좀 주셨다. 덕분에 늦은 시간에 강가에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오붓하게 식사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칼을 뽑았다. 핸드폰 연결해서 ‘감사’를 틀고, 정성스럽게 따라 불렀다. 한가로운 시골 밤길을 달리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
큰 애가 요사이 자기주장이 많아졌다. 특별히 '싫어요'를 자주 한다. 천성이 순한 편이라 견딜 만 하지만 그래도 매를 들거나 야단을 쳐야 할 정도로 아니다 싶을 때가 있다. 주제는 대개 이런 거다. 우는소리 하지 마라, 떼쓰지 마라, 엄마·아빠 말씀 잘 들어라, 동생이 싫어하는 건 하지 마라. 아이와 함께 부대끼면 종종 성찰할 기회를 잡는다. 먼저 우는소리 하지 마라, 자신의 요구를 정확히 표현할 언어능력이 아직 없어서인지 감정이 앞선다. 징징대는 것만큼 상대방을 지치게 하는 게 없다. 그래도 아내는 참으면서 달래고, 언어를 사용하라고 반복해서 가르친다. "○○주세요.", "○○싶어요."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 역시 불만이 쌓일 때 언어가 아니라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린이 그림책은 다. 내용이 쉽고 재밌으니까 한 번 들어보시길... 낚시를 못하는 키아바가 어느 날 큼지막한 물고기를 낚는다. 근데 기쁨도 잠깐, 이 물고기가 씨익하고 웃는다. 키아바는 갈등하다 '웃는 물고기는 차마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놔주지만, 곧 후회한다. 아빠가 돌아왔다. 낚시에 실패한 키아바를 놀리다 위로하며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그때 곰과 마주친다. 마침 총이 없던 아빠는 어떻게든 곰을 쫓아보려고 사납게 울부짖지만, 그럴수록 곰은 더 난폭해진다. 이때 키아바가 아빠를 넘어 곰 앞에 선다. 그리고는 씨익하고 웃는다. '이게 뭐지...' 처음 보는 광경에 곰은 어리둥절해하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뒤돌아 간다. 아빠는 마을에 돌아와 사람들을 불러 놓고 신이 나서 말한다. ..
크는 애들은 가끔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크게 운다고 한다.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애는 가끔 그런다. 악몽을 꾸는지 아니면 낮 동안 마음이나 몸이 크게 불편했는지 한 번 울면 좀처럼 달랠 수가 없다. 피곤한 날 새벽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아주 난감하다. 화도 나고, 마음도 답답하지만, 더 문제는 내가 달랠 수가 없다는 거다. 애를 어려서부터 엄마가 재워서 그런지 잘 때는 엄마만 찾는다. 그래서 사실 잠든 척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잦다. 여보 미안해. 근데 며칠 전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많이 피곤한 날이었기도 하지만, 이 녀석이 나를 찾았다. 꺼이꺼이 울면서 아빠, 아빠 찾으면 피해 갈 길이 없다. 아빠 소리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일병 휴가 나와서 밤이 새도록 친구들과 놀다가 아침이 다 ..
가까운 과거든 먼 과거든 지난날의 허물 때문에 힘겹게 다듬어온 오늘의 삶 자리가 파멸되는 사람들이 있다. 덮어두고 지나온 나날들이 매섭게 일어나 걷잡을 수 없게 삶을 무너뜨린다. 보기에 안타깝다. 돌아보면 나 역시 상처를 사고팔고, 다른 사람의 삶을 모질게 휘저은 적이 있다. 때로 두렵다. 아물지 않는 상처가 오늘의 아픔이 될까 봐 조마조마할 때가 잦다. 어떻게 해야 하나, 뭐가 최선인가 고민 많이 하지만, 답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지나친 겸손일 수도 있다. 쿨하지 못한 성격이 때로 장애로 느껴진다. 지나친 겸손은 지나친 통제욕구와 교만의 다른 모습이기에… 근데 가만 생각해 보면, 지나친 겸손이 발목 잡는 건 오늘에 대한 성실성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욕망이다. 나는 더 유명하게 되고 잘 나가야 하는데 ..
내 만남과 인생 전부-100%-에서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사람이 인생에서 추구하는 알짬 중에 하나가 ‘의미’이기 때문일 거다. 벼랑 끝에 서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구원을 얻고, 새 삶을 다시 살고 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만남과 환경이 있다. 선물로 얻은 새 삶을 이끌어가는 손길을 믿으면서도 중간중간 개운하지 않은 그 시간과 공간, 어찌 봐야할지... 돌아보면 어떤 만남과 환경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어떤 사람과의 만남을 돌아보면서 서로에게 이런저런 의미가 있다고 아무리 긍정으로 생각해봐도 끝내 결론은 서로에게 누만 됐다. 어떤 환경도 마찬가지다. 분명 그 시간은 나한테 의미가 있었다고 어두운 과거에 초월적인 가치를 덧칠 해봐도 끝내 결론..
선악과 이야기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뭘까 생각하다 욕망이라는 주제와 만났다. 욕망을 거르지 못하는 인간 그리고 그 결과에 떳떳하지 못한 인간. 이게 원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동생을 살인한 형 가인에게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가인의 후예가 아닌가... 세상 구석구석 살 빼는 약을 주는 데가 많다. 욕망을 절제하는 걸 가르치지 않고, 실현하는 길을 가르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꿈과 비전이 자아실현과 만나서 신분 상승으로, 또 보란 듯이 이루어 내는 걸로 왜곡됐다. 청소년/청년집회에 난무하는 꿈과 비전이 불확실한 시기를 겪는 인생을 위로하고 견인할는지 모르지만, 욕망을 다스리는 근력을 키우는 데는 실력발휘를 못한다. 언죽번죽 말뿐이다. 남 욕할 처지가 못 된다. 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