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불친절은 죄다 본문

종교적인 너무도 종교적인

불친절은 죄다

한, 정훈 2014. 10. 15. 16:35

피해자는 자기 사건의 해결 과정을 통제하거나 적어도 관여한다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즉, 피해자가 자기 삶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고, 이 선택권을 현실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고 느껴야 한다. (...) 결국 피해자가 안전하다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정의(justice)'를 경험할 필요가 있다. (...) 보복은 그보다 긍정적 정의를 경험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사실 피해자가 정의를 경험할 수 없다면 범죄 피해를 온전히 치유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 정의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경험이기도 하다. 즉, 정의는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피해자는 누군가가 사건을 처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 처리에 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알고 싶어 하며, 일정한 단계에서는 최소한 의견이라도 제시해 사건에 관여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워드 제어 <회복적 정의> 40-41.


보통, 피해자가 기소 내용에 대해 일정한 목소리를 내고, 최종적 처리 단계에서 피해자- 또는 피해자 요구-가 고려될 거란 사실을 기대하고, 사건 경과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피해자는 증인 이상이 될 수 없고, 심지어 범인이 체포되어도 통보받지 못한다고 한다.


주거침입 절도를 당한 적이 있고, 어두운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한 적도 있는 한 여성이 어떤 세미나에서 발언했다. 공소 절차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고지를 받지 못하고, 의견 진술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제가 검사거든요! 제 부하 직원조차 제게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43)


나는 소송 경험이 없어서 낯선 이야기이지만, 세월호 사건을 대하는 정부와 정치 세력의 태도를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가만 보면, 일상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제를 지속해서 논의하고, 그 과정을 공유하는 일은 꼼꼼한 업무 태도보다는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깊다. 위 사람일수록 아랫사람에게 설명이 없다. 이유야 어쨌든, 한 마디로 불친절하다. 나는 종교적 관점에서 불친절은 죄라고 생각한다. 모든 불친절이 죄다 죄는 아니겠지만, 어떤 불친절은 명백히 죄다. 그 어떤 불친절에는 인간에 대한 무시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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