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늘 있다. 사랑은 본문
중학교 때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 어머니와 극도로 사이가 나빴다. 추억이 되지 못할 만큼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회심하면서 한 번, 결혼하면서 한 번, 현빈이 유빈이 낳고 한 번씩 아주 조금 철이라는 게 들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늘 어머니 항변은 이거였다. 넌 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니?
그럼 내 항변은 이거였다. 왜 어머니는 스스로 변하지 않고, 그걸 제 몫으로 넘기세요?
비바람에 여린 잎들은 다 떨어지고, 찬이슬에 풀이 죽어 누워있는 꼴이 영 안쓰럽다. 그래도 살아 있는 잎사귀들은 아침이 되어 햇살을 받으면 또 보기 좋게 살아난다.
지나서 생각해보니 둘 다 옳다. 상대방 을 향한 기대는 종종 사랑 의 울타리를 넘어 연민으로 자기를 보게 한다.
어쨌든 이제는 언제 그렇게 물고 뜯고 서로 할퀴었는지 기억이 없다. 그냥 가슴 깊은 곳에 화려하지도 초라하지도 밝지도 무겁지도 않은 그런 게 덤덤하고 묵묵하게 서 있다.
근데 모진 풍파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걸 상처라 부르지 않고, 사랑이라 부른다. 그게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가끔 사랑이 맞는지 물어보면 그렇다고 꼬박꼬박 대꾸해준다.
소리를 높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울해 보일 정도로 차분하지도 않고, 부드럽지만 공간을 가득 채우는 묵직한 미소로 수줍게 대답해준다. 그럼 그만이다. 사랑인 줄 확인했으니까.
댓글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