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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쓴 편지

작아도 희망은 희망이다

한, 정훈 2013. 10. 20. 12:50

푸른 밤 _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1.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려고 도움을 구할 때, 동료가 해준 말이 있다. 우선 꾸준히 듣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작곡가와 곡을 찾게 된다고 했다.

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읽다 보니까 해설이 없어도 읽히는 시인과 시가 있다. 김수영의 시가 좋고, 나희덕의 시가 좋다.

왜 푸른 밤일까? 달이 밝아서일까? 밤이 가진 어둠을 누를 만큼의 희망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 밤이 '서슬이 푸르다' 할 때처럼 기세가 등등하다는 말일까?

2.

누구에게나 밤은 있고, 그 밤은 기세가 등등하다. 그런데 돌아보면 푸른 밤은 내게 타협하지 않은 길잡이였다. 돌아보면 그 밤에도 줄곧 한 길로 이끌렸다.

가을이라 그런지, 아니면 요새 날씨 때문인지, 샛별이 아주 선명하다. 몇이나 새벽에 별을 올려다볼까? 나만 봤으면 좋겠다. 나눠 보기 아까울 만큼 작으니까. 밤의 끝에서 피어나는 희망은 아주 작으니까.

3.

날이 새면 나도, 에둘러 온 내 길의 끝에 아주 작은 샛별로 희망을 비추었던 길잡이가 있었음을 알게 될까? 그래서 내 밤도 푸른 밤이었다고, 더듬더듬 말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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