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2026(A)부활절 일곱째 주일 노아교회 설교 본문

하늘을 품은 삶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사도행전 1: 6-14입니다.
사도행전 1: 6-14
6 사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9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그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에 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10 예수께서 떠나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12 그리고 나서 그들은 올리브 산이라고 하는 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서, 안식일에도 걸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13 그들은 성 안으로 들어와서, 자기들이 묵고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이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와 빌립과 도마와 바돌로매와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열심당원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였다.
14 이들은 모두,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다.
봉독자: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함께: 하나님 감사합니다.
먼저 인사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오늘은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입니다. 부활절 기간에 계속해서 사도행전을 읽었습니다. 오늘 부활절 마지막 주일에는 사도행전 1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승천이 기록된 본문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으로 완성되는 부활의 메시지가 어떤 내용인지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큰 질문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이제 작별을 고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묻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사도행전 1: 6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를 묻는 질문은 사도행전 1: 4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진전된 질문입니다. 예언자들에 따르면 성령의 오심은 말세의 시작을 의미하며(욜 2: 28-32), 말세의 시작은 또한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점을 의미합니다(렘 23: 5-6; 겔 37: 21-27; 단 7: 27 참조). 그래서 사도들의 질문은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꿈꾸는 궁극은 말세이면서 또한 회복의 시작입니다. 정치, 도덕, 풍속 따위가 아주 쇠퇴하여 끝판이 다 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회복이 시작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임재가 이날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큰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께서는 때매김 자체를 거절하는 대답을 하십니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사도행전 1: 7
시기에 대한 궁금증을 걷어내고 예수님께서 다른 답변을 주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 8
온 세상에 나가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 말씀이기도 하고, 사도행전 전체의 요약이기도 해서 큰 질문보다 더 큰 대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를 아는 것보다 사명의 위탁이 중요합니다. 좀 가볍게 다시 표현하면, “알려고 하지 말고, 네 할 일을 해!” 이 정도로 고쳐 쓸 수 있을까요.
취임식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저자가 같습니다.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다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
누가복음 9: 51
승천이 언급됩니다. 이른 감이 있습니다. 아직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도 전에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다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이사야 50장에서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며 수난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읽은 바 있습니다. 성육신-수난-부활-승천은 따로 뗄 수 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역동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읽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 압축해서 말하지만, 이 말에는 성육신부터 수난, 부활, 승천까지 모든 여정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두 가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늘’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하늘에 올라가신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승천은 몸이 창공으로 올라간 물리적 공간적 이동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승천은 하늘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서, 아니 하늘을 품는 영광 가운데 ‘우주적 구원 중개자’ 역할을 맡으시는 취임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곧 하늘 나라입니다. 주기도문에도 하늘이 두 번 나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모두 같은 단어(οὐρανός 우라노스)입니다.
하늘은 실제적인 공간이긴 하지만 창공만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특정 장소에 계시는 분으로 규정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장소를 규정하지, 장소가 하나님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을 규정하는 것이지 하늘이 하나님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하늘을 품고 계신 아버지”로 바꾸어 생각해 보자는 제안도 유의미합니다(찰스 윌리엄스).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이 지배하는 영원을 품은 상태로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거기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권좌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우주적 구원의 중개자가 되십니다. 9절에 ‘구름에 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표현에서 구름도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의 표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에 가려 이제 우리가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초월적인 분이 되셨습니다. 이 부분이 조금 어렵더라도 오늘 우리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그럼 초월적인 분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갈수록 갑갑하죠. 그러나 여러분 어렵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가봅시다.
제자도의 시작: 하늘을 품은 삶
정리해 보겠습니다. 말세의 시작이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작이라고 믿은 사도들은 성령의 임재를 때가 언제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때를 묻지 말고, 네 할 일을 하라고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 초월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으로 충만한 영광 가운데 온 우주를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 8
이것이 사도행전 전체의 요약이라고 했는데, 성령의 오심은 2장, 예루살렘에서의 증언은 3-7장, 유다와 사마리아에서의 증언은 8-12장, 땅끝까지 이르러 증언하는 것은 13-28장의 내용입니다.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성령의 임재를 통해 진정한 제자가 되는 여정, 곧 하늘을 품은 삶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기록한 책입니다.
여러분 여기 커피가 담긴 컵이 있습니다. 이것은 컵 입니까 커피 입니까? 때로는 안에 담긴 것이 전부를 규정하기도 합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에 뭐가 담겼는지, 우리 삶에 뭐가 담겼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사람이지만, 우리 마음과 우리 삶에 아름다운 것이 담기면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따듯한 것이 담기면 따듯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이 담기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과 우리 삶에 하나님의 영이 담겨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우리 육신과 육체적인 모든 조건은 쇠퇴하지만 하늘, 곧 영원을 품은 삶이 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인지 묻지 말고, 오늘 우리 마음과 우리 삶에 영원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지극히 초라한 이 여정을 걷는 것이지만, 하늘을 품는 삶, 영원을 품는 삶을 소망하고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언제 완결될지 끝을 알고 하는 실천이 아닙니다. 갑작스럽고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그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내일입니다.
성경은 영원을 품는 삶, 하늘을 품는 삶이 특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인간 존재의 평범한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 창조의 목적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소망 없는 순간에 참된 회복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성령의 임재를 소망하는 하늘을 품은 삶이 되는 축복을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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