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2026(A)삼위일체 주일 노아교회 설교 본문

새 창조의 안식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창세기 1: 1-2: 4a입니다.
창세기 1: 1-2: 4a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3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4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5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셨다.
7 하나님이 이처럼 창공을 만드시고서, 물을 창공 아래에 있는 물과 창공 위에 있는 물로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다.
8 하나님이 창공을 하늘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은 드러나거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고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11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돋아나게 하여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2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고, 씨를 맺는 식물을 그 종류대로 나게 하고,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를 그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14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서,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
15 또 하늘 창공에 있는 빛나는 것들은 땅을 환히 비추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6 하나님이 두 큰 빛을 만드시고, 둘 가운데서 큰 빛으로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빛으로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 별들도 만드셨다.
17 하나님이 빛나는 것들을 하늘 창공에 두시고 땅을 비추게 하시고,
18 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시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20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고, 새들은 땅 위 하늘 창공으로 날아다녀라" 하셨다.
21 하나님이 커다란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는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날개 달린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22 하나님이 이것들에게 복을 베푸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여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하셨다.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24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집짐승과 기어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25 하나님이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집짐승도 그 종류대로, 들에 사는 모든 길짐승도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2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2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사는 모든 것, 곧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도 모든 푸른 풀을 먹거리로 준다"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31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1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2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엿샛날까지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3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4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의 일은 이러하였다.
봉독자: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함께: 하나님 감사합니다.
먼저 인사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삼위일체는 늘 말하지만 인간적인 논리와 직관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원의 차원에 계시기 때문에 유한한 인간의 조건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왜 그리스도교는 2천 년 동안 설명하려고 했을까요? 그리스도교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할 때 삼위일체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서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사랑은 삼위일체적인 사고 없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창세기 본문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고백: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고백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 역시 고백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창세기 1: 1-2
이것이 고백인 이유는 아무도 태초를 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으로부터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무에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창조를 포함하여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하신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체의 의미를 요약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의 혼돈에 경계를 설정하시고 분리하셨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질서’를 제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사랑의 행위이지만, 인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서 한 창조는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이신 하나님(요일 4: 8)의 자연스러운 사랑의 발현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질서를 만드시고, 모든 존재를 복되게 하셨습니다. 사랑의 창조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사랑의 창조는 하나님의 결핍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사랑의 충만함에 의한 결과입니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인간의 창조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창세기 1: 26-28
두 가지 살펴볼 주제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의 형상’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창조의 목적입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26절에 ‘우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습니다. 장엄함을 나타내기 위해 쓴 복수형 표현이라는 해석도 있고, 천상의 어전 회의에서 천사들에게 한 말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대화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을 제안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상호의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에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나와 네가 있어야 사랑이 성립됩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이 대화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대화할 대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완전한, 독립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귐을 통해서 존재하십니다. 이것을 쉬운 말로 하면, 하나님은 소통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을 걸고, 듣고, 논의하십니다. 그리고 온전한 사랑의 사귐은 또 다른 사랑하는 존재의 창조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적인 이해입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성령강림 주일을 기념하면서 성령 충만이란 하나님을 공감하는 것(sympathy of the divine pathos)이라고 사실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의 결과는 소통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할 일만 잘하면 되는, 부품 같은 존재가 되는 것과 정반대의 부르심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상호의존성을 바탕으로 하는 소통하는 존재가 되라는 초청입니다. 여기서 인간의 사명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피조 세계를 돌보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이 오랫동안 마음대로 개발하고, 성장하라는 자본주의적인 아젠다로 오해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선한 목자인 것처럼 우리에게 피조 세계의 선한 목자의 역할을 맡기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신 말씀의 진짜 의미입니다. 인간은 독점하지 않고, 나누며, 견제받으면서 대화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의 창조를 통해 모든 존재가 복되게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독재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곧 소통하는 존재 그리고 돌보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고백이고, 여기에 응답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입니다. 태초부터 함께하신 인격적 말씀이신 성자 예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창조되어, 거듭나서 그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 청지기 된 인간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안식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안식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충만하셔서 모든 존재가 복되게 살아갈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엿새 동안 이 일을 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셨습니다. 여러분 10분간 휴식은 일하기 위해 하는 것일까요? 잠수하기 전에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오는 것은 어떻습니까?
일이 목적이 될 때 쉼은 수단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안식은 일하기 위한 휴식, 잠수를 위한 들숨이 아닙니다. 일주일의 시작을 월요일로 볼 것인가, 주일로 볼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좀 더 이해가 쉬울까요? 사랑의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신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거기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삶의 리듬은 안식에서 완성되고, 안식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에 악센트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인간에게 일이 주어졌지만, 인간은 일하는 존재이기 전에 복을 누리는 존재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 그토록 ‘사랑’을 언급할까요? 일의 세계가 아니라 사랑의 세계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세계에서는 이것, 저것이 아니라 ‘나와 너’가 있습니다. 이것, 저것은 다른 무엇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냉장고, 바지, 자동차, 옷, 직업은 다른 것으로 대체 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너’ 아니면 안 됩니다. ‘너’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자녀라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갈 4: 7).
종은 대체 가능합니다. 그러나 자녀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 없는 율법의 한계가 바로 이것입니다. 율법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법을 잘 지킬 사람이 필요해서 법을 만든 게 아닙니다.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잘할 존재가 필요해서, 하나님이 혼자 하기 힘드셔서 그 결핍 때문에 우리를 창조하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사귐의 존재이고 대화하는 존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의 결실이 바로 이 세상이고, 우리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완성한 생명과 복의 힘을 누리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독점하지 않으시고, 이 사랑의 세계로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주일에도 일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밤낮이고 책임감에 짓눌려 사는 인생이 있습니다. 아프지도 못하고, 먼저 가지도 못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인생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더라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부품이 아닙니다. 인간은 훨씬 더 복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태초의 죄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태초의 복을 누리는 것이 우리의 존재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주일을 작은 부활절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를 대체 가능한 부품 취급하는 사랑 없는 세상의 악다구니에 영혼을 빼앗기지 마시고, 주일 예배를 통해 안식의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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