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가능성 :: 한, 정훈

2026(A)성령강림절 3주 노아교회 설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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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A)성령강림절 3주 노아교회 설교

한, 정훈 2026. 6. 6. 18:09

과거를 바꾸는 말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창세기 12: 1-9입니다.

 

창세기 12: 1-9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는 일흔다섯이었다.

5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재산과 거기에서 얻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길을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6 아브람은 그 땅을 지나서, 세겜 땅 곧 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 때에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7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아브람은 거기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

8 아브람은 또 거기에서 떠나, 베델의 동쪽에 있는 산간지방으로 옮겨 가서 장막을 쳤다. 서쪽은 베델이고 동쪽은 아이이다. 아브람은 거기에서도 제단을 쌓아서, 주님께 바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9 아브람은 또 길을 떠나, 줄곧 남쪽으로 가서, 네겝에 이르렀다.

 

봉독자: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함께: 하나님 감사합니다.

 

먼저 인사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길을 떠나는 아브람 이야기가 기록된 창세기 본문으로 말씀의 은혜를 누리겠습니다. 먼저 그림책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조던 스콧의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입니다. 무주에 있는 푸른꿈고등학교에 강의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소개를 받고, 선물까지 받았습니다.

 

말 더듬는 아이가 발표 때마다 어려움을 겪습니다. 발표 후 자신감을 잃고, 바닥까지 가라앉은 어느 날 아버지가 아이를 강가로 데리고 가서 너는 강물처럼 말한단다.”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 여정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는 중이어서 전복시키는 이야기가 인상 깊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그림도 아름답습니다. 오늘 가져왔으니 관심 있는 분은 한 번 읽어보십시오.

 

설교 준비 말고도 요새 변화에 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자주 합니다. 사람은 변하는가? 사람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는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가? 이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선생님으로, 스승으로 모시는 분이 한동안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왜 스승이 없을까요?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게을러서. 스승을 만들지 못한 것은 제 생각이나 사상이나 사유하는 방식과 사는 방식이 완성되었거나 기준이 높기 때문이 아닙니다. 게을러서. 그것이 진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없습니다.

 

왜 없다고요? , 게을러서. 더 찾아 나서지 않고, 더 공부하지 않고, 제 세계에 갇혀서 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어쩌면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어떤 사람을 절대 텍스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절대 텍스트는 오류가 없는 자료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자료입니다. 사람에게는 절대 텍스트가 필요합니다. 왜 없다고요?

 

복의 근원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기 12: 1-3

 

하나님께서 절대 텍스트를 떠나라고 하십니다. 나고 자란 곳, 자기의 세계, 자신을 가르치고 이제껏 길러주고 보살펴 준 곳을 떠나라 하십니다. 내가 내 세상이라고 생각한 삶의 바운더리(영역)를 벗어나라고 하십니다. 옛사람들에게 고향을 떠나는 것은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불 밖이 위험하다는 말이 있지만, 비할 바가 아닙니다.

 

자연에서 맹수를 만날 수도 있고, 다른 적대적인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기본적인 의식주 어느 것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 생활한 이스라엘을 떠올려 보십시오. 광야이고 큰 규모의 집단이라 특히 힘든 부분이 있겠으나 고대 사회에서 집 떠난 나그네의 삶이라는 것이 그만큼 척박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그네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뿌리가 뽑히는 것, 한 시도 안심할 수 없는 삶, 그래서 늘 불안한 삶, 정주에 대한 갈증을 늘 느끼는 삶, 그래서 안정을 도모할 수 없는 삶입니다. 자기를 반기는 곳도 사람도 없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나그네를 환대하는 문화가 생겼을 것입니다.

 

이런 험난한 여정을 떠나라고 하시면서 아브람이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이 주는 축복을 많이 받아서 부자가 될 것을 약속하신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부를 더 축적하고 싶어서 고향을 떠나 나그네가 되는 삶을 각오했을까요? 너무 현대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사고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은 순종에 대한 보상(혹은 재화)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입니다. 즉 아브람이 복된 존재, 생명력 그 자체가 될 것을 약속하신 겁니다. 기존의 모든 안전망을 끊어내고 하나님만 의지해서 나아가는 아브람은 이제 새로운 존재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변화를 넘어선 새 창조의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하는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도덕적 기준을 따르는 저주와 형벌의 집행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입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할 때도 여전히 복 받는다 하면 보상으로써의 재화를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존재를 복된 존재로 변화시키는 분이십니다. 그럴 만한 능력이 있고, 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시고, 우리 존재의 긍정입니다.

 

변화의 진짜 동력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이어야 할까요? 변화입니다. 새 창조입니다. 거듭남입니다. 다 같은 의미로 쓸 수 있습니다. 천국을 죽어서 가는 곳으로만 이해하지 말자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가는 천국이든, 이 땅에 임하는 오는 천국이든 다 죽어야 갈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회개 없이는 천국을 살 수 없습니다. 계속 같은 삶을 사는 것을 우리는 변화했다고, 새롭게 창조되었다고, 거듭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전과는 달라진 것이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을 회개의 과정 혹은 회심의 여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처음과 같은 질문입니다.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요? 회개의 동력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삶에 대한 불만족입니다. 지금 내가 사는 방식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외적인 근거가 아니라 내적인 근거입니다. 매우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이 느낌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어쨌든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아야 다른 삶을 꿈꿀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브람도 어느 날 갑자기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랫동안 이곳, 본토 친척 아비 집의 삶이 불만족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만족만으로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습니다.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불만족을 후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회는 회개와 다릅니다. 외로움과 고독, 고립과 고독이 다르듯이 후회와 회개는 다릅니다. 후회로는 변화의 동력을 만들 수 없습니다. 불만족의 또 다른 조건은 배고픔입니다. 욕망이 후회보다 더 큰지 알 수 없지만, 욕망의 추구로 도달한 곳에 천국은 없습니다. 아마도 또 다른 배고픔이 있을 것입니다.

 

불만족보다 앞서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변화의 동력은 부르심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은혜의 부르심입니다. 예전에 우리는 은혜에 관해서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치매(인지증認知症)를 앓는 노인이 오후 4시만 되면 나가려고 했다는 이야기 기억나시죠. 그리고 그것이 아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은혜는 뒤돌아볼 때 깨닫게 됩니다. 아들이 어머니가 왜 4시에 나가려고 하시는지 끝내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알게 되는 것은 은혜입니다. 아는 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변화라는 주제 안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회개라는 주제 안에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저와 여러분의 가장 어두운 모습이 수용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도 은혜이지만, 변화를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취약한 부분까지도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은혜입니다. 후회가 변화의 가짜 동력인 이유는 많은 사람이 후회를 통해 오히려 자신이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가장 초라한 삶을 고백합니다. 내가 잘못 살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 말고는 받아주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은 이제 더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도덕적 일탈에 대한 후회보다 더 큰 개념입니다. 울고불고하는 것은 회개의 본질이 아닙니다.

 

은혜의 부르심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집을 떠나서, 나그네가 되더라도 나만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면 너는 복된 존재, 생명력 그 자체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아브람이 받은 약속이자 명령입니다. 아브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것은 잘못 배송된 편지입니다. 의외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요? 저한테 하신 말씀이세요? 저한테 왜요?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아브람처럼 우리 모두를 부르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는 존재가 있고, 아닌가 보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에 압도된 사람은 다릅니다. 부르심을 듣고 내면에서 뭔가 일어나서 짐을 싸고, 실제로 길을 떠납니다. 아브람의 떠남이 위대한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그를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지만, 그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떠났다는 사실, 본성에 거스르는 나그네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산을 정복한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왜 산에 올랐습니까? 산이 있어서요. 왜 위험을 무릅쓰고 그 사람을 도왔습니까? 도와달라고 해서요. 왜 손해를 감수하면서 끝까지 약속을 지켰습니까? 약속 했으니까요. 하나님은 누구든 부르실 수 있지만, 응답하는 사람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드십니다. 삶이 말을 걸어올 때, 하나님이 부르실 때 거기에 아멘하는 사람들과 함께 새 창조를 이룩하십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과거가 바뀝니다. 말 더듬는 아이가 너는 강물처럼 말한단다라고 한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자신의 언어를 다시 알게 된 것처럼, 치매 어머니와 씨름한 수많은 오후 4시가 사랑받는 시간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은 너무 나약합니다. 삶의 균형이 깨질 일이 수없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귀를 기울이십시오. 저와 여러분도 짐을 싸서 떠날 때가 되면, 하나님이 부르실 것입니다. 아니, 그 음성을 듣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변합니다.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고, 가르쳐주시고, 꿈꾸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후회와 불만으로 자기혐오에 빠지지 마십시오. 오히려 삶을 가라앉힙니다.

 

더 큰 세상이 정말 있을까, 지금과는 다른 삶, 더 나은 삶이 정말 있을까? 큰 질문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는 날 여러분의 과거를 모두 재편하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날이 변화할 것입니다. 길 떠나는 은혜의 부르심을 듣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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